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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듯 어둑어둑한 하늘이 물기를 품고 있었다. 어디론가 떠나기에도, 사진을 찍기에도 별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날씨, 간신히 카메라 장비를 챙기고 차에 몸을 실었다. 한국의 가을은 맑고 푸르기로 유명하다. 하늘은 높다. 바람도 가을의 틈새를 휘저으며 제 이야기를 한다. 가을과 잘 어울릴만한 곳, 오늘은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분원리를 둘러볼 생각이다. 올림픽대로를 따라 미사리를 지나면 팔당댐이 나오고 10여분 더 들어가면 조선백자 가마터로 잘 알려진 분원리가 얼굴을 내민다. 가을의 날씨치곤 그리 멋드러지지 않지만 흐린 가을 하늘도 나름 운치 있을 거라 믿기에 스스럼 없이 분원리로 향했다.



조선 백자 시대의 흔적, 분원리

행정구역명으로는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그 명칭의 유래를 살피면 이렇다. 조선시대 왕실의 음식을 맡아 본 관청으로 사옹원이 있었다. 사옹원은 지금의 경기도 광주에 분원을 설치하고 왕실에 소요되는 그릇을 조달하는 업무를 총괄케했다. 이때 설치한 사옹원 분원(요즘말로 하면 지점 또는 지사)이 굳어져 이 지역의 지명이 되었다. 조선시대 그릇을 조달하려면 당연히 가마를 설치하고 도자기를 구워야한다. 담당 관청은 분원에 있었지만 가마터는 퇴촌면과 남종면 등 광주 전역 약 340여곳에 산재해 있었고 지금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곳곳에 '조선백자 도요지' '사적 00호' 라고 적힌 문화재 알림판이 서있을 뿐 아니라 설령 이런 도요지가 아니더라도 농사를 짓거나 개발을 위해 땅을 파다보면 백자 도자기 파편들을 어렵지않게 발견할 수 있다. 당시 관청 분원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분원초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왕실 도자기의 기품, 분원백자자료관

경기도자박물관 ‘분원백자자료관’은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말까지의 찬란한 도자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분원초등학교 옆 쪽 길목에 드문드문 박혀 있는 도자벽돌은 방문객의 호기심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도자벽돌을 따라 비탈길을 올라서면, 철판으로 지어진 건물이 바로 분원백자자료관이다. 이 자료관은 본래 초등학교 고학년들이 사용하던 건물로, 분원리 가마터가 발굴된 후 박물관으로 재탄생되었다. 박물관 안에 들어섰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건 도자 파편들이다. 다른 박물관들과 달리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어 재미있다.
박물관이라 하기엔 너무나 아담하고 소박한 크기, 한 번 휘 둘러보기엔 그만인 곳이다. 도자기하면 이천이 먼저 떠오르지만, 이천의 도자기와 달리 분원리 도자기들은 대표적인 왕실 도자이다. 간결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의 분원리 백자를 보며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의 멋을 느껴 보자.



표정에서 한국인을 읽는다, 박물관 '얼굴'

얼굴에 중독된 연극 연출가 김정옥은 사람과 얼굴이 공존하는 공간을 구상하면서 경기도 광주 팔당호의 전경이 보이는 곳에 얼굴박물관을 탄생시켰다. 이곳에는 우리 옛사람들이 만든 석인(벅수, 문관석, 무관석, 동자석, 선비석, 민불 등)과 목각인형(상여나 꼭두극 또는 불교미술), 세계 여러 나라의 도자인형과 유리인형, 그리고 사람의 얼굴을 본뜬 와당과 가면 등 약 1천점의 얼굴과 관계된 모든 것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 전시품의 풍부하고 다양한 표정 속에는 작가의 장인 정신과 예술적 감수성이 느껴지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창조적 손길이 단단한 돌 속에 가득 배어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그야말로 이름 없는 석공들이 만든 세계적인 ‘얼굴 조각품’이다. 

 현재 이곳에서는 아홉 번째 특별전으로 ‘한국의 예술가 100인의 표정’ 전시회를 진행하고 있다. 보통사람들보다 엉뚱하면서도 유별난 예술가들이 작품을 창조해내는 과정에서 짓는 다양한 얼굴표정을 만나면서 그들의 삶과 창조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또한 박물관은 장인의 정신을 이곳에 들르는 일반인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얼굴그리기 체험’을 마련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조약돌에 얼굴그리기’ 프로그램을 확대한 것으로 재료와 기법을 다양화해 미술교육 및 인성교육에 중점을 맞춘 프로그램으로 방문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독서신문 기사내용 발췌)



팔당호의 생태 보고, 경안 습지 생태공원

팔당호 주변 8경 중 제 5경인 경안 생태 습지공원. 이곳은 팔당 수질 개선을 위한 여러 시설 중 하나로 수중 생태계 보고로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습지공원을 들어서 맨 처음 보이는 목조다리를 건너면,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수련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공원 입구에는 조성 목적과 산책로 지도가 그려진 안내판이 있고 주차장, 화장실, 벤치 등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약 2km에 이르는 산책로에는 소나무, 왕벚나무, 단풍나무, 감나무, 왕버들, 선버들 등이 우거져 있고 연밭 위를 지나는 목재 데크, 갈대 군락과 부들 군락, 철새조망대 등이 설치되어 있다. 온 사방을 둘러싼 단아하면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연꽃은 이곳의 큰 볼거리다. 가을이 다가오는 지금에야 연꽃의 풍경을 볼 수는 없지만 7, 8월 여름 한철 화려한 자태를 뽐냈으리라. 생태 습지공원은 총 1시간 코스로 구석구석에 일상 도시생활에서 볼 수 없었던 볼거리들이 많다. 생태 습지공원은 빼어난 외관상의 경관 뿐 아니라, 스스로 정화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인공 정화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 가는 것이다. 봄의 따뜻한 햇살과 여름 곤충들, 눈부신 가을 억새와 갈대, 그리고 겨울 철새로 유명한 곳. 경안 습지 생태공원은 자연의 위대한 힘을 슬며시 사람들에게 건네주고 있는 듯 하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이 꾸물거리던 하늘은 다행히도 산책이 끝날 때 까지 심술을 부리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누렇게 머리를 숙인 벼 이삭들이 한국의 찬란한 가을을 알리고 있었다. 잠시 팔당댐에 들러 삶은 옥수수를 사들고 하늘과 맞닿은 듯 검푸른 북한강을 바라본다. 강물은 굽이 굽이 흘러 서울을 관통할 것이었다. 새삼 물과 바람과 하늘, 사람을 깨우는 모든 자연이 경외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