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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난 지난 일요일 '남자의 자격'을 보지 못했다.
이정진, 윤형빈, 김성민을 제외하고는 진정한 의미의 남자(싸나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일곱 남자가
마라톤 하프코스 완주를 위해 기초체력 테스를 받는 그 전 방송분만 접했을 뿐이다.
그리고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잘해봤자 이정진, 윤형빈, 김성민 정도만 하프코스 완주를 하겠거니 생각했었다.

'파일럿 도전기'에서도 김성민과 김국진만 도전에 성공했으니까
처음부터 마라톤은 이들에게 무리라고 단정해 버렸다.
기껏 완주한 동료를 얼싸 안고 아쉬움 반 부러움 반으로 도전을 마무리 지을거라 믿었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는 '국민할매' 김태원이 20Km가 넘는 마라톤에 도전한다는게 내 머릿속엔 잘 그려지지 않았다.
'국민약골' 이윤석은 말할 것도 없었고 어딘지 늘 피로해보이는 '오십줄'의 이경규나
그나마 좀 나은 김국진 조차도 하프코스 완주는 힘들거라 여겼다.



그런데... 인터넷 기사를 보니 김태원을 제외한 이들 모두가 하프코스를 완주했단다.
2Km 체력테스트를 받을 때만해도 헥헥거리며 금방이라도 병원에 실려갈 듯한 남자들이 도전에 성공했단다.
서로들 얼싸 안고 눈물을 흘렸고 보는 시청자도 제작진도 펑펑 울었단다.
기록이야 어찌 됐든 완주라니... 정말 놀라움 자체다.
기사를 보니 꼴찌로 다리를 절룩거리며 들어오는 이경규와 이윤석을 보던 김성민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고 했다.
그 얼굴을 본 이경규 역시 눈물을 흘렸단다.

애초에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 대회 참가 자체가 무리라고 했던
이윤석은
수차례 멈추고 쓰러지기를 반복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결승점을 넘어섰다고 하니 한편의 '인간승리' 답다.



처음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이 전파를 탔을 때, 이 무슨 '무한도전의 아류'인가 싶었다.
어딘지 부족한 일곱명의 남자가 좌충우돌 한가지 미션에 도전하는 이야기는 어째 무도와 닮아 있었다.
"또 같은 리얼리티?"라 생각했는데 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뚜껑을 열고 회를 거듭할 수록 무도와는 색깔을 달리하더니
어느덧 제 궤도를 찾아 주말 예능의 강자로 군림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 이럴수가!!!
무도를 아끼는 한 사람으로서 거창하게 두 프로그램을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도 한가지 비교하라면 남자의 자격에는 억지 웃음이 없다는 거다.
출연진들이 느끼고 행동하는 모습을 그냥 무미건조하게 보여 줄 뿐,
쓸데없는 슬랩스틱이나 말장난 같은 코미디 요소로 치장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천천히 한 사람 한 사람의 캐릭터를 만들어가더니 어느새 수다쟁이 김봉창(김성민)을 만들고
국민할매 김태원을 세상에 내놓았다.
드라마에서 늘 불륜을 일삼고 심각하게 나오던 김성민이 그렇게 말이 많고 가벼운 사람이었나 싶을 만큼
이 프로그램의 캐릭터는 성공적이다.

김태원은 남자의 자격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다.
최근 모 핫쵸코 CF에서 '생머리 휘날리는 핑크 점퍼'로 세간에 화제를 뿌리고 있다.
록그룹 부활의 카리스마스 넘치는 기타리스트에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국민할매'로 거듭난 것은
순전히 '남자의 자격' 덕분이다.

'남자의 자격'은 조금 엉성한 일곱 남자의 색다른 도전기를 보는 것만으로
편하게 웃고 공감할 수 있는 순수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신입사원'편이나 '대학 신입생'편에서 보여지듯
자신이 처한 위치와 역할에 놀라울만큼 폭 빠져 있는 '착한 남자'들의 이야기.
'남자격'의 무한질주를 기대해 본다.


아.. 오늘 당장 어제 방송된 '마라톤 도전기'를 훔쳐 봐야겠다. 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