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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음식, 공연, 디자인 등 어느 예술 분야든 '명소'는 있습니다.

세계의 유명 도시를 거닐다 보면 독특한 동네나 특이한 거리를 마주하곤 한동안 넋을 잃곤 합니다. 몇년전에 들렀던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 거리가 그러했고 마카오의 골목들이 그러했지요. 뉴욕 속 젊은 예술가들의 거리 '소호', 영화 '노팅힐'로 단번에 유명해진 런던의 포토벨로 거리, 모스크바의 예술거리 '아르바트' 등 세월만큼이나 켜켜이 느낌을 간직한 거리들이 많습니다. 나라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는 거리들이 여기 한국에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의 특색있는 거리를 꼽으라면 인사동이나 홍대 앞 거리, 삼청동 정도를 떠올리게 됩니다. 모두 강북에 소재해 있지요. 어느새 높은 건물들이 도시를 덮어 버리면서 이젠 어딜가나 비슷한 느낌이 드는 강남에 뜨는 길이 하나 있습니다. 서울의 작은 유럽, 소호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신사동 가로수길입니다.

이 길은 신사동에서 압구정동으로 넘어가는 1Km 남짓한 2차선 도로입니다. 가로수길은 길 양 옆에 키 큰 은행나무들이 버티고 서 있는데 가을이 찾아오면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골목 골목을 색다르게 바꿔 놓아 지어진 이름입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은행나무길이 맞겠지만 서울엔 흔치 않은 은행나무 가로수이기에 '가로수길'이 더 독특하게 다가왔나 봅니다. 매년 10월말에서 11월 초순 사이에 이 골목에서 가로수길 축제가 열리는데 이때부터 색다른 명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몇 개 인테리어나 디자인 상점이 전부였던 길가에 전문 소품점, 유럽풍 카페 들이 하나둘 들어오더니 지금은 약 100개가 넘는 숍들이 독특한 외관을 뽐내며 사람들을 즐겁게 합니다.




강남 한 복판의 강북스러운 동네. 아파트나 고층건물이 없는, 강남에서는 꽤 독특한 느낌의 길. 경사진 좁다란 골목에 일반 주택들도 있고, 주택을 개조한 좁은 사무실도 많습니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 문화가 혼재된 듯한 다양한 분위기에 맘껏 취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디자인숍, 장식품, 화랑, 유럽풍 옷가게, 고풍스런 엔티크 소품가게, 이국적 취향에 초점을 맞춘 퓨전 음식점, 유럽풍 카페 등이 들어서 있어 마치 외국의 거리에 와 있는 느낌을 줍니다. 이국적인 정취를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몰리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 또한 이곳을 많이 찾고 있지요. 사실 인물촬영에 이곳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을 듯 합니다. 패션 화보는 물론이고, 쇼핑몰 촬영에도 별도의 세트장이 필요가 없지요.

봄이 되면 푸릇푸릇한 가로수가 거리를 수놓고, 가을이면 은행나무 잎이 거리를 한가득 옐로우 빛으로 만듭니다.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면 최고의 낭만 거리가 탄생합니다. 세월의 흐름에서 조금 비껴간 듯 여유로움을 머금고 강남 속 독특한 골목문화를 지키고 있는 신사동 가로수길. 개발 논리에 무너지지 않고, 세계의 유명한 예술의 거리처럼 이 곳만의 개성과 문화를 꿋꿋하게 담아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이곳을 방문해 추억을 하나씩 가져가는 사람들에게도 꽤 오래 가슴속에 남겨질 그런 장소가 되길 바랍니다.

신사동 가로수길은 '강남의 삼청동'이라고도 불립니다.  저마다 독특하면서도 세련된 가게 외관이 눈길을 붙잡지요. 길 양편에 은행나무를 따라 전체적으로 유럽 어느 도시의 골목 하나 옮겨놓은 느낌입니다. 삼청동 길이 정갈한 한옥의 길이라면 신사동 가로수 길은 유럽 빈티지 스타일이 듬뿍 담긴 거리입니다.




가로수 길 상점들의 물건 역시 여기서만 구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지요. 유럽이나 일본 등지에서 들여온 수입품이 주류를 이룹니다.  서울 명동에서 청담동까지는 문화적으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욕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습니다. 강남에서 산다는 것은 지리적인 특성을 넘어서 이른바 서울에서 '잘 나가는' 부류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은 과시보다는 그저 즐기기 위한 공간이 많습니다. 바쁘게 자리를 피해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곳, 그저 보이는 대로 즐기고 웃고 떠들면 되는 곳입니다. 이곳은 주차시설이 거의 없습니다. 고급자동차를 타고 격식을 갖춘 식당에서 서비스를 받는 대신 걸어 다니며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들어가 원한다면 하루 종일 있어도 되지요. 특히 비가 내리는 날에는 어둠을 밝히는 조명과 함께 색색들이 최고의 하루를 선사합니다. 그래서 혹자는 가로수길을 컬러로 가득찬 '색깔의 나라'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노랗고 파란색 건물 외관에 붉은 색 주차 안내판, 여기에 푸른 가로수 잎들이 자기 빛깔로 사람들을 반깁니다. 카페 '블룸앤구떼'처럼 봄이면 통유리로 된 문을 활짝 열어젖힌 카페가 즐비해 마치 정취 있는 유럽의 길거리를 걷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외향만 가져온 게 아닙니다. 이곳 가게주인들은 해외유학파가 많아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일요일엔 문을 닫는 가게도 있습니다. 장삿속이 왜 없겠냐마는 자신이 즐기고, 잘할 수 있는 무엇을 소비자들과 함께 '즐기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가로수길의 정서는 '강북의 정서' 혹은 '빈티지'로 상징됩니다. 낡은 것에 대해 친밀하게 느끼고 가족끼리, 친구끼리 오붓하게 교감하는 것에 열광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작년 거의 모든 일간지와 잡지에서 소개기사가 나왔으며, 영화나 광고의 배경장소 섭외 1순위로 부상한 가로수 길. 그곳에 문을 연 가게는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화제의 장소가 됐으며, 심지어 그 길을 보겠다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여학생들도 생겼났습니다.




무엇이 신사동 가로수길을 이처럼 '뜨게' 한 걸까요? 최신 트렌드를 읽는 데에는 최고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광고인들이 이 질문에 대한 독특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광고회사 TBWA코리아가 지난해 발간한 <가로수길이 뭔데 난리야?>라는 글모음집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책을 기획한 TBWA코리아의 카피라이터 박웅현(46)씨는 책에서 "삼청동은 경륜, 홍대앞은 열정, 인사동은 전통, 대학로는 표현, 청담동은 과시라고 한다면, 신사동 가로수길은 로망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돈을 벌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인들이 이제 자신만의 꿈을 좇아 뒤돌아보기 시작했다"고 표현했습니다. 이 책은 일요일 쉬는 가게들에서 '헝그리 정신의 종말'을, 꽃미남 마케팅에서 '여성경제권 시대'를, 낡은 건물에서 '유럽식 느림의 미학'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가로수길은 이렇듯 한국의 낡은 문화를 접고 새롭게 혼합된 '퓨전 문화'로 들어서는 개선문과 같은 공간입니다. 낭만과 열정, 표현이 공존하는 곳, 가로수길에서 길을 잃어도 좋겠습니다.


"헝그리 정신은 분명 삶의 질에 자리를 내주었다.
미국으로만 향하던 시선이 이제는 유럽을 향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성장하고 시대가 바뀌면서 미국에 대한 짝사랑도 식기 시작했다.
서서히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한국 사회의 눈이 유럽을 보기 시작했다.

서울시 강남구 가로수길...
그러나, 가로수길의 국적은 더이상 대한민국이 아니다.
가로수길은 미국보다 하루 먼저 할로윈을 맞이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가 합쳐지고 우리 것으로 재생산되는 곳, 바로 가로수길이다."

- TBWA KOREA 펴냄 <가로수길이 뭔데 난리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