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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겨울이다. 가을이 훅하고 떨어져 나갔다.
어느 드라마 대사 처럼 "낙엽 하나 뚝 떨어지니 내 마음도 뚝 떨어지더라"같은
멜랑꼴레한 기분이고 싶지는 않지만 계절이, 날씨가 사람의 기분을 흔드는건 사실일거다.
이런 겨울 앞. 마음의 군불을 조금이나마 지피고 싶은 분께
여기 아주 특별한 산문집 두 권을 소개한다.





신경숙의 <효자동 레시피>

몇 년전 사진을 담기 위해 효자동을 찾은 적이 있다.
동장군이 기세를 떨치던 1월 어느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잿빛 하늘 아래 개량 한옥집과 새로 지은 빌라들이 서로 엉켜
마치 이방인의 도시인 양 낯설었다.
대대로 효자가 많이 나서 효자동이라 했던가.
어쨌든 내 기억속의 효자동은 흔히들 말하는 소박함이나 정갈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신경숙의 책 <효자동 레시피>를 받아 들고서 문득 그 때 그 기억이 떠오른건 왜였을까?
너무 추워 밖에서 오들오들 떨다가 아무 거나 먹자는 심사로 작은 식당에 들어갔는데
마침 냉이 향기 가득한 된장찌개를 맛보았던 추억이 겹친 까닭인지.
이 책 <효자동 레시피>는 신경숙 씨가 효자동에서 운영하는
작은 한옥 레스토랑의 이야기이자 음식에 관한 에세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씨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동명이인. 우스운건...

온라인 서점이나 포털에서 <효자동 레시피>의 신경숙씨를 클릭하면 작가 신경숙 씨의 작품들이 나온다는 거다.
이거.. 낚인건가. ^^
사람들 앞에서 늘 "요리하는 신경숙입니다"라고 소개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녀는 글쟁이가 아니라 순전히 요리를 즐기는 범인에 지나지 않는다.
효자동 골목길 한옥 레스토랑 <레시피>. 그곳에서 스친 5년간의 이야기를 맛본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너무 따뜻하다.

"누군가는 그 공간에서 청혼을 하고
누군가는 가게 주인의 음식에서 위로를 받고
그렇게 늘 정겨운 웃음소리가 새어나옵니다"


책 곳곳에 깨알같이 쓰여진 음식도구며 재료, 레시피에 대한 소개는 이 책의 또다른 묘미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애니매이션 <라따뚜이>의 마지막 장면을 예를 들며 음식이 가지는 무한한 힘을 넌지시 건넨다.
현재 효자동의 <레시피>는 잠시 휴업중이란다.
조만간 새로운 얼굴로 세상과 마주한다니 정겨운 시선으로 지켜 볼 일이다.

성석제의 <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


활동하고 있는 국내 작가 중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성석제를 꼽는다.
단편이든 장편이든 에세이든 그가 쓰는 글들은 어쩜 그리 하나같이 맛깔스러운지.
아주 짧은 단편만을 모은 <재미나는 인생>은 위트와 재치, 해학으로 번득이는
그의 재량을 유감없이 즐길 수 있었다.

<...맛있는 문장들>은 수문지기의 마음으로 좋은 문장과 글들을 가감없이 소개하는 책이다.
이미 잘 알고 있는 김유정의 <봄봄> 루쉰의 <아큐정전> 김승옥의 <무진기행>
그리고 <춘향전>까지. 고전과 현대를 망라한 문장들은
'문학집배원'을 자청하는 작가의 또다른 실루엣으로 보인다.



"문장에는 아름답고 슬프고 즐겁고 힘찬, 인생 희로애락애오욕의 모든 특성이 담겨 있습니다.
이 문장이 냇물과 도랑을 따라 흘러갈 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냇가를 따라 달리셔도 좋고 도랑에 발을 담그셔도 좋습니다.
문장으로 푸르러진 마음의 풀밭에 누워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시든가요."


이 책에서 성석제의 글은 많지 않다.
각각의 작품들이 쏟아내는 문장들을 천천히 곱씹을 수 있도록 약간의 도움말 정도만 건넬 뿐이다.
그런데도 이 책은 성석제와 꼭 닮아 있다.
장난끼 가득한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문득 문득 무릎을 치게 만드는 숨은 마력 때문일거다.
머리 아플 때, 뭔가 풀리지 않는 매듭을 앞에 두고 있을 때 휘~이 한 번 읽어 보면 참 포근해지는 책이다.